Ha Junsoo (河 俊 秀)

신념과 독선의 딜레마

2016-12-16

신념이 없으면 혼란스러운 세상을 일관된 기준으로 살아가기 힘들다. 자기만의 신념이 없는 사람은 '우유부단(優柔不斷)' 하다는 평을 듣기 마련이다. 반면 강한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대쪽같다' 며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경향이 있다. 과연 이런 사회적 평가는 합리적인걸까? 정말 신념을 세우는 일은 그 자체로 당위(當爲)일까?

진리를 향해 신념을 세운다면 칭찬할 일이다. 근원적으로 옳은 가치를 향해 일관된 기준을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당위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어떤 선택이 진리에 가까운지 모른다. 제한된 정보에 근거해 추측할 따름이다. 그래서 신념을 세우는 일은 눈을 가린채 주변을 더듬어 걸으며 자신의 방향이 옳다고 믿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정보가 잘못된 방향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길이 맞다고 고집하는것을 독선(獨善)이라고 한다. 신념이 너무 강한 사람은 독선에 빠지기 쉽다. 독선에 빠진 사람은 잘못된 길에 들어서도 '대쪽같이' 자신의 길을 고집한다. 중요한것은 진리를 찾는 것이지, '대쪽같이' 일관된 방향으로 걷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신념을 지키는 일 그 자체는 당위가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신념은 멀리해야할 위험한 독배일까? 그렇지 않다. 신념이 없으면 일관된 기준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다. 이리저리 방황하게 된다. 방황해서는 기껏해야 제 주변을 맴돌 뿐이다. 저 멀리 있는 진리에 다가갈 수 없다. 방황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일관된 기준이 필요하다. 기준을 세우려면 먼저 신념을 세워야 한다.

신념이 지나치게 강하면 독선에 빠지기 쉽고, 신념이 없으면 제자리를 맴돌며 방황한다. 딜레마다. 이 팽팽한 상충관계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독선에 빠지지 않고, 방황하지도 않으면서 진리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나는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해봤다.

첫 째, 스스로의 신념을 의심하고, 부러트리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신념과 진리 사이의 두 가지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1. 첫 째, 자신의 신념이 진리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다. 이 경우 신념을 의심하고 부러트리려는 습관은 잘못된 신념을 바로잡는데 도움이 된다. 둘 째, 자신의 신념이 진리와 일치하는 경우다. 이 경우에도 스스로를 의심하는 습관은 자신의 신념과 그 반대논리 사이의 치열한 논쟁으로 자신의 신념을 보다 분명히 이해하고 깊이 깨닫게 해준다. 따라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고, 부러트리려 시도하는 습관은 자신의 신념이 옳은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모두 진리를 탐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

둘 째, 지식을 쌓는 것이다. 신념을 세우는 일은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진리를 추측하고, 그것을 믿는 것이다. 올바른 추측을 하기 위해선 정보를 제대로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정보를 제대로 해석하려면 지식이 깊고 넓어야 한다. 여기서 지식이란 진리 또는 진리에 가깝다고 합의된 이론 따위를 의미한다. 신념으로 정보를 해석해서는 진리에 가까이 다가설 수 없다. 진리에 근거해서 정보를 해석할 때에만 진리를 정확히 추측할 수 있다. 자연과학, 공학, 경제학 등 과학적 방법론이 자리잡힌 학문을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학문엔 진리 또는 진리에 가깝다고 합의된 이론과 개념이 비교적 많다.

요약하자면 끊임없이 자신의 신념에 의심을 품고, 부러트리려는 시도를 하면서도 공부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자는 것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행위를 하면서도 내가 하는 행동이 정말 진리에 부합하는지 의심해보는 것이 좋다. 반대논리에서 내 스스로를 공격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무한한 자기의심과 반대논리의 공격을 이겨냈다면 소박하게 자축해도 좋다. 그 신념은 어쩌면 진리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는 와중에도 지식을 쌓는 일을 멈추어선 안된다. 지식이 있어야 제대로 된 자기의심을 할 수 있다. 아침에 커피 한 잔 하면서 경제신문을 읽거나 자연과학 교양서를 읽는것도 좋다. 정 바쁘다면 퇴근 후 잠들기 전에 관심있는 분야의 논문을 한 두 편 뽑아 가볍게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오래전부터 우리 선조들은 겸손함과 학문에 정진하는 자세를 미덕으로 여겼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또는 '책 속에 길이있다' 같은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두 미덕은 위에서 말한 딜레마를 극복하는 두 방법과 일맥상통한다. 겸손해야 스스로를 부러트릴 수 있고, 학문에 정진해야 지식을 쌓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의심하고 부러트리면서도 지식 쌓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을 때, 비로소 신념과 독선의 딜레마를 넘어 진리에 다가설 수 있을 테다.


  1.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책세상)